이마누엘 칸트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마누엘 칸트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칸트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다른 뜻에 대해서는 칸트 (동음이의)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이마누엘 칸트 Immanuel Kant 이마누엘 칸트 (18세기 작품). 작가 정보 출생 1724년 4월 22일(1724-04-22) 프로이센 왕국 쾨니히스베르크 사망 1804년 2월 12일(1804-02-12) (79세) 프로이센 왕국 쾨니히스베르크 직업 철학자, 인류학자, 물리학자, 사서, 작가, 교육자, 대학 교수, 수학자 언어 독일어 국적 프로이센 왕국 학력 University of Königsberg 학파 독일 관념론 스승 Martin Knutzen, Johann Gottfried Teske 부모 Johann Georg Kant (부) 주요 작품 3비판서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 비판》 서명 묘소 Königsberg Cathedral 임마누엘 칸트(독일어: Immanuel Kant [ɪˈmaːnu̯eːl kant][*], 1724년 4월 22일 ~ 1804년 2월 12일)는 근대 계몽주의를 정점에 올려놓았고 독일 관념철학의 기반을 확립한 프로이센의 철학자이다. 칸트는 21세기의 철학에 까지 영향을 준 새롭고도 폭 넓은 철학적 관점을 창조했다. 그는 또한 인식론을 다룬 중요한 저서를 출간했고, 종교와 법, 역사에 관해서도 중요한 책을 썼다. 그의 탁월한 저서 중 하나인 《순수이성 비판》은 이성 그 자체가 지닌 구조와 한계를 연구한 책이다. 이 책에서 칸트는 전통적인 형이상학과 인식론을 공격하고 있으며, 칸트 자신이 그 분야에 공헌한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가 만년에 출간한 다른 주요 저서에는 윤리학을 집중적으로 다룬 《실천이성 비판》과 미학, 목적론 등을 연구한 《판단력 비판》이 있다. 그는 종래의 경험론 및 독단론을 극복하도록 비판철학을 수립하였다. 인식 및 실천의 객관적 기준을 선험적 형식에서 찾고, 사유가 존재를, 방법이 대상을 규정한다고 하였다. 도덕의 근거를 인과율이 지배하지 않는 선험적 자유에서 찾고, 완전히 자유로운 도덕적 인격의 자기 입법을 도덕률로 삼았다. 그는 도덕적 인격을 목표로 하면서도 자의적인 ‘한 사람의 의욕과 다른 사람의 의욕이 자유의 보편원칙에 따라 합치될 수 있는 여러 조건’을 법이라 생각하였다. 칸트에게 내적 자유의 실현 수단인 법은 외적 자유를 제한하는 강제를 본질로 한다는 점에서 도덕과 엄격히 구별되었다. 칸트는 국가에 대해서 계약론의 입장을 취했는데, 그는 국가계약을 역사적 사실처럼 생각한 계몽기의 사상을 발전시켜서 이것을 국민주권을 위한 이론적 요청으로 생각하였다. 또 칸트는 국가 간의 전쟁을 하지 않는, 영구 평화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저술했다. 그는 전쟁으로 인해 생긴 문제점을 전쟁이 끝난 뒤에 조정하여 해소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 제도의 내용은 국제법의 개념에 근거한 국제 연맹이어야 한다고 제안하였다.[1] 목차 1 생애 2 칸트 철학 2.1 비판 철학 2.2 인식론 2.3 윤리학 3 영향과 비판 3.1 영향 3.2 비판 3.3 제자가 바라본 칸트 4 저서 4.1 칸트 전집 5 같이 보기 6 각주 7 참고 자료 8 외부 링크 생애[편집] 1724년 프로이센의 상업도시 쾨니히스베르크(현재의 러시아 칼리닌그라드)에서 수공업자인 아버지 요한 게오르크 칸트(Johann Georg Kant)와 어머니 안나 레기나(Anna Regina)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11명 자녀 가운데 넷째로 태어났다(11명 자녀 가운데 어른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4명뿐이었다). 칸트는 '에마누엘'(Emanuel)이란 세례명을 받았으며, 히브리어 공부하고서 '임마누엘"(Immanuel: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2])로 바꾸었다.[3] 그는 삶을 통틀어서 단 한번도 쾨니히스베르크에서 100마일 멀리 떨어진 곳으로 여행하지 않았다.[4] 그 아버지인 요한 게오르크 칸트(Johann Georg Kant) (1682–1746)는 당시 프로이센에서 가장 북쪽 도시인 메멜에서 이주한 독일인 마구(馬具) 제작자였다. 그 어머니인 레기나 도로시아 류터(Regina Dorothea Reuter) (1697–1737)는 뉘른베르크에서 태어났다.[5] 칸트 할아버지는 스코틀랜드에서 동프로이센으로 이주한 사람이었으며, 그의 아버지는 여전히 가족의 성을 스코틀랜드식("Cant")으로 적곤 했다.[6] 어렸을 때 칸트는 돋보이지는 않았으나 성실한 학생이었다. 그는 경건주의를 따르는 가정에서 성장했다. 기독교의 경건주의는 종교적인 헌신과 겸손함 그리고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칸트가 받은 교육은 수학과 과학보다 라틴어와 종교였고, 엄격하고 가혹한 훈련을 강조한 것이었다.[7] 쾨니히스베르크의 옛 대학 건물 칸트 부모는 청교도적 생활을 하였으며, 이는 유년시절 칸트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칸트는 1732년 어머니와 친분 있던 신학자 슐츠[주 1]가 지도하던 사학교 프리드릭스 김나지움에 입학하고 1740년에 졸업했다. 같은 해 쾨니히스베르크의 대학에 입학하여 철학과 수학을 공부했는데, 특히 마르틴 크누첸(Martin Knutzen)에게 논리학과 수학을 지도 받았다고 한다. 이후 자연과학에 관심 두었고 아이작 뉴턴의 물리학에 매료되었다.[8] 후대 전기 작가 기록에 의하면, 칸트는 1746년 《활력의 진정한 측정에 관한 사상》(Gedanken von der wahren Schätzung der lebendigen Kräfte)이라는 졸업논문과 함께 대학을 졸업했으나, 아버지가 사망함에 따라 학자금과 생계유지를 위해 수년에 걸쳐 지방 귀족가문의 가정교사 생활하면서 홀로 철학연구를 계속했다고 한다. 그러나 칸트는 곧 대학으로 돌아왔으며 1755년 6월 12일, 《일반자연사와 천체이론》(Allgemeine Naturgeschichte und Theorie des Himmels)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음과 동시에 《형이상학적 인식의 으뜸가는 명제의 새로운 해명》(Principorum primorum cognitionis metaphysicae nova dilucidatio)이라는 논문으로 대학에서 강의할 자격을 얻었다. 이후 대학에서 일반논리학, 물리학, 자연법, 자연신학, 윤리학 등 여러 주제로 강의했다. 1756년 크누첸이 사망하자 그 후임으로 교수직을 얻으려 노력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렇지만 1764년 프로이센의 교육부에서 제공한 문학 교수자리를 거절할 정도로 철학 교수직을 갈망했다. 18세기까지도 수학과 물리학은 자연철학으로 간주되어 철학 영역에 속했다. 1766년에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왕립도서관 사서로 취직하여 1772년까지 근무하기도 했다. 그사이 칸트는 원하던 대로 쾨니히스베르크 대학 철학 교수직을 얻었으며, 이때 발표한 교수취임논문(1770년)은 칸트 비판 철학의 시작을 알리는 저술로 평가되고 있다. 10여 년간 철학적 침묵기를 거친 후 칸트는 1780년대에 일련의 중요한 저서, 즉 에세이 《계몽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Beantwortung der Frage: Was ist Aufklärung?, 1784), 《윤리 형이상학의 정초》(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 1785), 《자연과학의 형이상학적 기초》(Metaphysische Anfangsgründe der Naturwissenschaft, 1786)를 잇달아 발표하면서 점점 명성이 올라갔다. 그리고 《순수이성비판》(초판:1781년, 재판:1787년), 《실천이성비판》(1788), 그리고 《판단력비판》(1790)에서 그의 비판철학의 정수를 선보였다. 눈부신 학문적 성취와 더불어 1786-8년에는 쾨니히스베르크대학의 총장에 선출되는 영예를 누렸다. 칸트는 한번도 쾨니히스베르크를 떠나지 않았으며, 알려진 것처럼 규칙적인 일상생활을 영위하면서 강의와 사유에 전념했다. 다만 1792년에 논문출판과 검열을 두고 학부 관리처와 작은 의견 충돌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의 논문은 《인간본성에 있어서의 근본악에 관하여》(Vom radikalen Bösen in der menschlichen Natur)란 제목으로서 당시의 계몽주의사상과 종교에 관한 칸트의 솔직한 견해가 대학 관리처로부터 경고를 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평생 독신으로 살며 커피와 담배를 즐겼던 칸트는 1804년 2월 12일 새벽 4시, 80세를 향년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가 마지막으로 “그것으로 좋다(Es ist gut)”라는 말을 남겼다.[9] 칸트 철학[편집] 연속 기획 이마누엘 칸트 칸트주의와 의무론적 윤리학 초월적 관념론 · 비판철학 · 사페레 아우데  · 스키마 · 아 프리오리와 아 포스테리오리  · 분석판단과 종합판단의 구분 · 물자체 · 범주 · 정언명령 · 가언명령 · "목적의 왕국" · 정치철학 주요 저서 《순수이성비판》 · 《형이상학 서설》 · 《계몽이란 무엇인가?》 · 《도덕형이상학 원론》 · 《실천이성비판》 · 《판단력비판》 주요 인물 버클리 · 데카르트 · 헤겔 · 흄 · 쇼펜하우어 · 스피노자 · 테텐스 관련 독일 관념론 · 쇼펜하우어의 비판 · 신칸트주의 v • d • e • h 칸트는 18세기 철학에 있어 가장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친 인물로 평가 받는다. 실제로 칸트 이전의 철학과 이후의 철학은 차이를 보인다. 이것은 칸트가 초감각적인 세계를 논하는 기존의 형이상학과는 다른 '학문으로서의 형이상학'의 체계를 세우려고 했으며, 그러한 체계의 근거가 되는 인식론을 연구하여 합리주의와 경험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인식론에 바탕을 두고 두 사상의 한계에서 벗어난 철학을 하려고 시도했기 때문이다. 칸트가 말하는 '학문으로서의 형이상학'은 인식론에 근거를 두고 이성이 이성 자신을 비판하는 철학이다.[10] 비판 철학[편집] 칸트의 철학이 비판철학이라 불리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의 세 가지 저서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에서 연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들 책의 제목 끝에 붙인 '비판'이라는 개념은 칸트가 과거의 철학을 비판적 연구 분석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또한 칸트는 이러한 측면에서 스스로의 철학을 '비판철학' 이라고 불렀다. 칸트가 이러한 비판 철학을 펼치게 된 데에는, 뉴턴의 자연과학과 루소의 철학, 그리고 인간의 인식능력에 대한 흄의 회의를 받아들인 점이 크게 작용하였다.[11] 권의 저서 내용을 요약한 질문과 각 책이 다룬 영역은 다음과 같다. 《순수이성비판》(1781년): 나는 무엇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인식론[12] 《실천이성비판》(1788년):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윤리학[12] 《판단력비판》(1790년): 나는 무엇을 바랄 수 있나?-미학[12] 인식론[편집] 이마누엘 칸트의 인식론의 선험적 도식[주 2] 17~18세기 철학의 인식론은 크게 합리주의와 경험주의로 나뉘었다. 여기서 합리주의는 인간이 본래부터 지닌 선험적 이성을 중시하였고, 경험주의는 인간이 경험함으로써 지식을 얻는 귀납법을 중시하였다. 합리주의의 방식은 "백마는 희다"와 같이 술어가 주어의 개념에 이미 포함되어 있는 분석판단[14] 을 하므로, 지식을 확장해 나가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하였고, 경험주의의 방식은 귀납적인 방법을 강조하며 종합판단을 한 나머지 진리의 필연성을 찾는 데 한계를 드러내었다.[주 3] 여기서 칸트는 이 두 사상을 통합한 선험주의를 주장하였다. 즉, 지식의 보편성과 필연성을 인정하면서도 인식을 확장하는 '선험적(선천적:a priori) 종합판단' 을 긍정하였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인간의 이성이 지닌 한계를 지적하면서 인간 인식에 선험적 형식을 도입하는 이른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Kopernikanische Wendung)을 시도하였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란 인간이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인식이 대상의 관념을 만들어낸다는 생각이다.[11] 쉽게 말하면 인간은 대상이 있는 대로 아는 것이 아니라, 아는 대로 그 대상이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칸트에게 진리는 주체의 판단형식에서 찾아야 하는 무엇이다.[11] 칸트의 인식론은 감성을 통해 얻은 감각을 범주를 사용하여 지성(Verstand:오성)[주 4]으로 인식하고, 초경험적인 것은 이성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감성은 어떤 물자체를 지각하는 능력이며, 범주는 이러한 감각을 인식하게 하는 하나의 틀이다. 따라서 감성과 지성은 인간이 지각 하는 데 있어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적인 요건인 셈이다. 여기서 칸트는 인간이 사물을 인식하는 데 시간과 공간 값이 필요하다고 본다. 구체적인 연장과 존재하는 시간이 없으면 우리는 인식을 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다만, 감정과 같은 것은 공간 값은 없지만 시간 값만 있는 것으로 보았다. 칸트는 저서 《순수이성비판》에서 초경험적인 것을 이성으로 알려고 하는 것을 비판하였다. 가령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존재론적 증명 등을 비판하여 여러 형이상학적인 사상들을 배격하고자 하였다. 이 말은 형이상학의 영역이 거짓이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인식 할 수 없는 것으로, 어떤 형이상학적 명제가 참인지 거짓인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칸트는 인간의 지성(Verstand)이 사물의 현상을 분류,정리할 수 있으나, 그 현상 너머에 숨은 본질에는 이를 수 없다고 보았다. 인간은 사물의 본질이나 신에 해당하는 물자체를 인식할 수 없는 것이다.[12] 따라서 칸트에 따르면, 기존의 형이상학은 인간이 인식할 수 없는 초감각적이고 초경험적인 것을 인식의 범주 안으로 끌어들이는 오류를 저지른 것이다. 칸트는 형이상학이 그런 오류에서 벗어나 이성의 인식체계에 대한 학문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했다.[10] 하지만 칸트는 형이상학적인 신, 영혼들의 존재를 도덕을 다루는 과정에서 다시 요청하게 된다. 윤리학[편집] 칸트는 윤리학을 연구하면서 주관적인 감정이나 상황에 따라 ‘차이가 나는’ 도덕이 아니라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도덕을 추구하였다. 모두가 합리적이고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도덕을 지키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도덕을 도덕법칙이라고 부르는데, 칸트는 인간은 자신의 감정에 따라 선을 베푸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았다. 여기서 칸트는 인간은 마음 속에서 충동과 도덕이 투쟁한다고 보았다. 즉, 옳고 그른 일을 하는 것에 대해서 인간의 마음 속에서는 충동과 도덕심이 투쟁을 하며, 도덕이 이기면 선한 행동을 하고 충동이 이기면 그른 일을 하게 된다고 보았으며, 그렇다고 도덕이 충동을 없애 버려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칸트는 행위의 ‘결과’보다 행위의 ‘동기’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는 어떤 결과를 얻거나 어떤 목적을 달성하려는 ‘수단으로서 명령’이 아니라, 명령 그 자체가 목적인 ‘무조건적인 명령’을 도덕법칙으로 제시하였다. 다시 말해 때와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조건적인 가언(假言) 명령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도 무조건 따라야만 하는 의무로서 명령인 정언(定言) 명령을 내세운 것이다.[18] 칸트에 따르면, 누구나 어떤 조건에서든 따라야만 하는 정언 명령은 다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명령, “네 의지의 준칙(격률)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될 수 있도록 행위 하라”이다.[18] 이 말은 쉽게 말해 누구든지 어떤 행동을 할 때 스스로 생각할 때 다른 모든 사람이 그와 같은 행동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되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둘째 명령, “너 자신과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을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도록 행위 하라”이다.[18] 칸트는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자연론적인 인간관을 반대하였다. 인간이 자연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고 본 자연론적인 인간관을 부정하면서, 그는 모든 인간의 평등한 존엄성을 강조했다. 칸트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도덕 법칙’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인격체로서,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며 그에 합당한 존엄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18] 영향과 비판[편집] 쾨니히스베르크(현 러시아 칼리닌그라드)에 세운 이마누엘 칸트의 동상 영향[편집] 서양 사상에 대한 칸트의 폭넓은 영향은 헤아릴 수 없는 정도이다.[19] 특정한 사상가에게 준 구체적인 영향을 넘어서, 칸트는 그가 살았던 시대에서부터 지금까지에 이르는 철학연구가 칸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철학의 틀 구조를 바꾸었다. 달리 말하면, 그는 패러다임의 전환(paradigm shift)을 이루었다. 이러한 전환은 공리주의에서 후기 칸트학파의 사상에 이르는 혁신과 밀접하게 연관된 채로 철학과 사회과학, 인문학 분야 모두에서 유지되었다. “ 칸트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은 우리의 지식에 대한 연구의 중심에서 인간 주체 또는 아는 사람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전환이 없다면) 우리는 우리와 아무 상관없는 사물 자체와 우리에게 그 사물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철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20] ” 칸트의 생각은 그 전부 또는 일부가 이후에 각기 다른 주장을 펼친 학파들에게서 드러나고 있다. 독일 관념론, 실증주의, 현상학, 실존주의, 비판 이론, 언어 철학, 구조주의, 후기 구조주의, 해체주의가 그러한 예이다. 칸트의 영향은 사회과학과 행동과학에서도 나타나는 데, 막스 베버의 사회학과 장 피아제의 심리학, 그리고 노암 촘스키의 언어학을 예로 들 수 있다. 칸트가 패러다임을 철저하게 바꾸었기 때문에, 특별히 칸트의 저서나 칸트의 용어를 언급하지 않는 학자들까지도 칸트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의 생애 동안에, 그의 사상은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그는 1780년대에서 1790년대 까지 라인홀드, 피히테, 셸링, 헤겔, 노발리스에게 영향을 끼쳤다. 칸트의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글쓰기에 영향을 받아 일어난 철학 운동은 독일 관념론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어 독일 관념론자인 피히테와 쉘링은, 전통적으로 "형이상학"에 포함되었던 "절대적인 것", "신", "존재"와 같은 개념을 칸트 비판 철학의 영역으로 옮기려고 시도하였다.[주 5] 비판[편집] 칸트가 살아있을 당시부터 칸트 철학에 대한 비판과 반발이 있었다. 칸트는 이성의 능력과 종교를 모두 비판했고, 이러한 비판은 당시에 이성을 신뢰하던 철학자나 종교를 믿던 종교인에게는 매우 불만스러운 것 이었다.[21] 제자가 바라본 칸트[편집] 칸트의 제자 요한 헤르더는 그의 스승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 사고를 위한 이마는 침착한 유쾌함과 기쁨의 자리였다. 말에는 풍부한 사상이 넘쳐흘렀고 농담과 재치가 장기였다. 알만한 가치가 없는 것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어떤 음모나 편견 그리고 명성에 대한 욕망도, 진리를 빛나게 하는 것에서 그가 조금이라도 벗어나도록 유혹하지 못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도록 부드럽게 강요했다. 내가 최고의 감사와 존경을 다해 부르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 칸트이다. ” 저서[편집] 《일반 자연사와 천체론》 (Allgemeine Naturgeschichte und Theorie des Himmels, 1755년) 《미와 숭고의 감정에 관한 고찰》 (Beobachtungen über das Gefühl des Schönen und Erhabenen, 1764년) 《아름다움과 숭고함의 감정에 관한 고찰》, 이재준 옮김, 책세상, 2005년, ISBN 978-89-7013-518-2 《감각 가상계의 형식과 원리》 (De mundi sensibilis atque intelligibilis forma et principiis, 1770년) 《감성계와 지성계의 형식과 원리들》, 최소인 옮김, 이제이북스, 2007년, ISBN 978-89-5644-092-7 《순수이성비판》 (Kritik der reinen Vernunft, 1판, 1781년: 2판, 1787) 최재희 옮김, 박영사, 2009년(개정판), ISBN 978-89-6454-181-4 백종현 옮김(전2권), 아카넷, 2006년, ISBN 89-5733-031-3 《학으로서 등장할 수 있는 모든 장래의 형이상학을 위한 서설》 (Prolegomena zu einer jeden künftigen Metaphysik, die als Wissenschaft wird auftreten können, 1783년) 《형이상학 서설》, 백종현 옮김, 아카넷, 2012년, ISBN 978-89-5733-247-4 《계몽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 (Beantwortung der Frage: Was ist Aufklärung?, 1784년) 《세계시민적 견지에서 본 보편사의 이념》 (Idee zu einer allgemeinen Geschichte in weltbürgerlicher Absicht, 1784년) 《세계시민적 견지에서 본 보편사의 이념》, 이석윤 옮김, 《윤리 형이상학의 정초》 (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 1785년) 《윤리형이상학 정초》, 백종현 옮김, 아카넷, 2005년, ISBN 978-89-5733-064-7 《도덕 형이상학을 위한 기초 놓기》, 이원봉 옮김, 책세상, 2002년, ISBN 978-89-7013-364-5 《자연과학의 형이상학적 기초》 (Metaphysische Anfangsgründe der Naturwissenschaft, 1786년) 《실천이성비판》 (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 1788년) 백종현 옮김, 아카넷, 2002년, ISBN 89-89103-56-8 최재희 옮김, 박영사, 2011년, ISBN 978-89-6454-112-8 《판단력비판》 (Kritik der Urteilskraft, 1790년) 이석윤 옮김, 박영사, 2005년, ISBN 978-89-10-03012-6 백종현 옮김, 아카넷, 2009년, ISBN 978-89-5733-153-8 《순수이성의 한계 내의 종교》 (Die Religion innerhalb der Grenzen der bloßen Vernunft, 1793년)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 백종현 옮김, 아카넷, 2011년, ISBN 978-89-5733-217-7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 (Zum ewigen Frieden. Ein philosophischer Entwurf, 1795년) 이한구 옮김, 서광사, 1992년, ISBN 978-89-306-1021-6 《윤리 형이상학》 (Die Metaphysik der Sitten, 1797년) 칸트 전집[편집] 독일 왕립학술원에서 간행한 전집 (Kant gesammelte Schriften, 편집 Königliche-Preußische Akademie der Wissenschaften, 1910ff., Berlin). 흔히 "학술원판"으로 불리는 이 전집은 칸트저술 인용의 표준으로 사용되고 있다. 주어캄프 출판사에서 간행한 봐이셰델 편집 (Kants Werke, W. Weischedel (Hrsg.), Suhrkampff) 같이 보기[편집] 독일 관념론 신칸트파 각주[편집] 내용주 ↑ 칸트의 아버지는 가난한 기술자이었고 자녀가 아홉명이었기 때문에, 칸트의 교육비를 후원할만한 환경이 아니었다. 그런 그에게 신학교 교수인 프란츠 알베르트 슐츠(Franz Albert Schulz)가 도움을 주었다. 슐츠는 독일의 계몽주의 철학자 크리스티안 볼프의 제자이었다. 슐츠는 칸트가 엄숙한 분위기의 프리드릭스 김나지움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나중에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에서 칸트를 가르친 마르틴 크누첸도 볼프의 제자이었다.[8] ↑ 이 그림에 독일어 용어 옆에 적어놓은 한국어 용어는, 독일어를 모르는 사용자를 위한 참고사항일 뿐이다. 따라서 한국어 용어의 뜻을 바탕으로 원래 독일어 용어의 의미나 칸트 철학의 맥락에서 그 용어의 개념을 알려고 하면,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다. 이 그림에 쓰인 한국어 용어는 많은 경우 김석수의 책을 참조하였다. 기존의 한국어 번역에서는 'a priori'를 선천적으로, 'transzendental'을 '선험적'이라고 옮겼으나, 김석수는 'a priori'를 '선험적'으로, 'transzendental'을 '초월적'으로 옮겼다. 'a priori'는 '무엇보다 앞선'이란 뜻으로, 김석수에 따르면 칸트에게 'a priori'란, "논리적으로 경험에 앞서고 경험에 독립적이며, 경험에 근거하지 않으며 경험에서 추상된 것도 아니어서, 경험과는 독립적으로 획득되고 설정되는 타당함"을 뜻하는 '비판적 선험주의'(Apriorismus)와 관계되는 것이다. 그림에서 보면, 선험적인 것으로 '시간과 공간', '범주'를 적어놓고 있다.[13] ↑ "경험주의는 종합판단을, 합리주의는 분석판단을 가슴에 안고 진리를 찾아 험난한 파도를 헤치며 바다를 가로지르는 무모한 항해를 하는 셈이지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런 시도를 안타까워하던 칸트 할아버지는 분석판단처럼 보편타당성을 지니면서 동시에 종합판단처럼 인식을 확장하는 판단형식이 있었으면 하고 새로운 길을 찾습니다. 그것이 바로 ‘선천적 종합판단’이라는 것입니다."[15] ↑ 기존의 칸트 저서 번역서들은 일본어판을 우리말로 옮긴 중역본이서 일본의 예를 따라 "오성"이란 말을 사용하였다. 칸트 저서를 번역한 백종현 서울대 철학과 교수에 따르면, 일본에서 페어슈탄트(Verstand)를 오성(悟性)으로 옮긴 것은, 일본의 경우 오(悟)라는 한자에 '안다'는 의미도 있어서 그랬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에는 오(悟)가 '깨닫다'는 뜻으로 쓰이므로, 오성보다 지성(知性)으로 번역하는 것이 정확하다고 언급했다.[16] 김석수도 순수이성 비판 서문의 번역에서 Verstand를 지성으로 옮겼다. 김석수에 따르면, 칸트에게 'Verstand'란 사물의 본질을 깨닫는 능력보다는 감성을 통해 주어진 내용을 분류,정리,통일하는 능력을 의미한다.[17] ↑ 피히테와 쉘링이 칸트의 비판 철학이 지닌 경계를 넘어서 시도한 확장을 두고 최근 학계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다. 예를 들어 그들의 시도가 독단적인 것인지 아니면 전(前)-비판 철학인지를 둘러싼 논쟁이었다. 베이서의 책은 이러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베이서(Beiser), 프레데릭(Frederick C.) 《독일 관념론: 주관론에 맞선 투쟁》(German Idealism: The Struggle against Subjectivism), 1781–1801. 케임브리지, MA: 하버드 대학교 출판부, 2002. 참조주 ↑ 최인숙 (2006). 《칸트 (살림지식총서 158)》. 살림. 81쪽.  ↑ 신약성서 마태복음 1:23 ↑ 만프레드 쿠엔(Kuehn, Manfred). 《칸트 전기》(Kant: A Biography). 케임브리지대학교 출판부(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1, p. 26 ↑ 릭 루이스(Lewis, Rick). 2007. <칸트 200주년>('Kant 200 Years On'). "지금 철학"(Philosophy Now). No. 62. ↑ “국제 도시(Cosmopolis)”. 쾨니히스베르크는 죽었다(Koenigsberg-is-dead.de). 2001년 4월 23일. 2009년 7월 24일에 확인함.  칸트 어머니의 이름은 때때로 안나 레기나 포터 라고 잘못 알려졌다. ↑ http://www.csudh.edu/phenom_studies/western/lect_9.html ↑ 전기 정보 출처: 만프레드 퀴엔(Kuehn, Manfred).《칸트:전기》(Kant: A Biography.) 케임브리지대학교 출판부, 2001. ISBN 0-521-49704-3 ↑ 가 나 이마누엘 칸트; 김석수 옮김 (2002). 《순수이성 비판 서문》. 책세상. 110-111쪽. ISBN 89-7013-301-1.  더 이상 지원되지 않는 변수를 사용함 (도움말) ↑ 고명섭 (2004년 5월 14일). “칸트의 사유, 그 행보를 좇다”. 한겨레신문사. 2009년 8월 3일에 확인함.  ↑ 가 나 임마누엘 칸트; 김석수 옮김 (2002). 《순수이성비판 서문》. 책세상. 128, 132쪽.  더 이상 지원되지 않는 변수를 사용함 (도움말) ↑ 가 나 다 서울대학교 독일학연구소 (2000). 《시인과 사상가의 나라 독일이야기1》. 기획출판 거름. 292-293쪽.  ↑ 가 나 다 라 마르틴 침머만; 박종대·이정모 옮김 (2004). 《청소년을 위한 교양》. 사계절출판사. 84쪽.  더 이상 지원되지 않는 변수를 사용함 (도움말) ↑ 이마누엘 칸트; 김석수 옮김 (2002). 《순수이성비판 서문》. 책세상. 174 각주5쪽.  더 이상 지원되지 않는 변수를 사용함 (도움말) ↑ 오트프리트 회페; 이상헌 옮김 (1997). 《이마누엘 칸트》. 문예출판사. 68-69쪽.  더 이상 지원되지 않는 변수를 사용함 (도움말) ↑ 양운덕 (2001). 《아킬레스는 왜 거북을 이길 수 없을까?(읽을수록 감칠맛 나는 엉뚱한 철학이야기)》. 창비. 161-162쪽.  ↑ 백종현 교수 인터뷰, 금동근 (2009년 5월 13일). “"칸트철학 본질은 인간존엄"”. 동아일보.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 이마누엘 칸트; 김석수 옮김 (2002). 《순수이성비판 서문》. 책세상. 175 각주6쪽.  더 이상 지원되지 않는 변수를 사용함 (도움말) ↑ 가 나 다 라 서울 대학교 사범 대학 국정 도서 편찬 위원회 (2003). 《고등학교 윤리와 사상》. 지학사. 112-113쪽.  ↑ Prof. 올리버 존슨(Oliver A. Johnson)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만약에 플라톤이 쓴 국가를 제외한다면, (순수이성 비판)은 지금까지 나온 철학 책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 《서양 세계의 위대한 사상가》, 이안 맥그릴(Ian P. McGreal, 편집., 하퍼콜린스(HarperCollins), 1992. ↑ 스테판 팜키스트(Stephen Palmquist), 〈칸트의 코페르니쿠스적 논리의 건축적 구조〉("The Architectonic Form of Kant's Copernican Logic"), Metaphilosophy 17:4 (1986 10월), pp.266-288; 3장의 교정과 재출간 칸트의 인식체계:비판 철학에 대한 건축적 해석(An architectonic interpretation of the Critical philosophy) (Lanham: University Press of America, 1993). ↑ 이마누엘 칸트; 김석수 옮김 (2002). 《순수이성비판 서문》. 책세상. 165쪽.  더 이상 지원되지 않는 변수를 사용함 (도움말) 참고 자료[편집] 논문 김석수, 칸트에 있어서 법과 도덕, 서강대학교 윤종한, 칸트의 이성 신앙과 그 역사적 실현에 관한 연구, 전남대학교 칸트 『순수이성비판』 / 김재호 pdf 칸트 『실천이성비판』 / 박정하 pdf 칸트 『윤리형이상학 정초』 / 김재호 pdf 칸트 『판단력비판』 / 김상현 pdf 단행본 김석수, 순수이성 비판 서문, 책세상, 2002, ISBN 89-7013-301-1 백종현, 존재와 진리, 철학과현실사, 2000, ISBN 89-7775-281-7 하영석, 대한철학회 편, 칸트 철학과 현대사상, 형설출판사, 1984 프리드리히 카울바하, 백종현 옮김, 칸트-비판철학의 형성과정과 체계, 서광사, 1992 오트프리트 회페(Höffe, Otfried) (2004):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뮌헨(München) 한국어 번역본: 이마누엘 칸트, 이상헌 옮김, 문예출판사, 1997, ISBN 89-310-0311-0 백과사전 이 문서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에서 GFDL 또는 CC-SA 라이선스로 배포한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의 "법의 발달#칸트" 항목을 기초로 작성된 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외부 링크[편집] 위키미디어 공용에 관련된 미디어 분류가 있습니다.이마누엘 칸트 위키문헌에 이 글과 관련된 원문이 있습니다. en:Author:Immanuel Kant 철학 포털 이마누엘 칸트 -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다음백과 미러) 이마누엘 칸트 - 두산세계대백과사전 “이마누엘 칸트”. 《네이버캐스트》.  이마누엘 칸트: 네이버 백과사전 이마누엘 칸트의 작품 - 프로젝트 구텐베르크 (영어) 이마누엘 칸트 - 월드캣 (독일어) 프로젝트 구텐베르크 (독일어) 칸트와 독일 관념주의 (독일어) 마인츠 대학의 칸트 연구소 (영어) 칸트에 관계된 웹사이트 모음집 (영어) The University of Adelaide Library (한국어) 칸트 철학 요약-파깨비 서울대 철학과 강의 요약 v t e 철학 동양 철학 서양 철학 철학자 주요 분야 논리학 미학 윤리학 인식론 존재론 형이상학 응용 분야 경제철학 과학철학 교육철학 기술철학 메타철학 법철학 사회철학 수리철학 심리철학 언어철학 역사철학 정치철학 종교철학 환경철학 학파 고대 중국 농가 도가 명가 묵가 법가 선종 양주학파 유가 음양가 현학 그리스-로마 다원주의 학파 메가라 학파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 스토아 학파 신플라톤주의 신피타고라스 학파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에레트리아 학파 에피쿠로스 학파 엘레아 학파 원자론 이오니아 학파 (에페소스 학파, 밀레토스 학파) 키니코스 학파 키레네 학파 페리파토스 학파 플라톤주의 피론주의 피타고라스 학파 해석학 인도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 중세 유럽 기독교 철학 르네상스 휴머니즘 스콜라주의 토미즘 동아시아 성리학 일본 주자학 한국의 유교 인도 바이타 신정리 학파 비시슈타드바이타 이슬람 수피즘 이븐 시나 철학 칼람 근대 인물 데카르트주의 마르크스주의 스피노자주의 신칸트주의 칸트주의 헤겔주의 관념/물질 결정론 경험론 공리주의 관념론 (객관적 관념론, 독일 관념론, 선험적 관념론, 영국 관념론, 절대 관념주의, 주관적 관념론) 실용주의 유물론 이원론 일원론 자연주의 합리론 환원주의 기타 개인주의 자유주의 고쿠가쿠 토대주의 네오토미즘 모더니즘 보수주의 사회 계약 사회주의 신유가 실존주의 실증주의 아나키즘 유사주의 자연법 전체론 집산주의 초월주의 허무주의 현상학 휴머니즘 현대 분석 철학 공동체주의 과학적 실재론 과학적 회의주의 과학주의 규범 윤리학 논리 실증주의 덕 윤리학 도덕적 현실주의 롤스 철학 메타윤리학 반증 가능성 법실증주의 분석 마르크스주의 분석 여성주의 비트겐슈타인 철학 비판적 합리주의 빈 학파 생성 문법 실험 철학 응용 윤리학 일상 언어 철학 탈분석 철학 현대 공리주의 대륙 철학 구조주의 비판 이론 사회적 구성주의(Social Constructivism) 사회 구성주의(Social Constructionism) 서방 마르크스주의 신마르크스주의 신유사주의 실존주의 여성주의 철학 탈구축 탈구조주의 탈근대주의 프랑크푸르트 학파 해석학 현상학 기타 교토 학파 객관주의 러시아 우주주의 입장 규범성 도덕적 개별주의 도덕적 보편주의 도덕률 상대주의 허무주의 회의주의 미학 형식주의 실재 관념론 물리주의 물활론 반실재론 실재론 유명론 유물론 자연주의 존재론 사건 행동 이론 과정 철학 인식론 경험론 관념론 구성주의 인식론 신앙주의 유아론 인식론적 개별주의 합리론 회의주의 지역별 철학 그리스 철학 미국 철학 인도 철학 일본 철학 중국 철학 폴란드 철학 한국 철학 v t e 계몽주의 주제 무신론 자본주의 시민자유 반계몽주의 비판적 사고 이신론 민주주의 경험론 백과전서파 계몽절대주의 자유시장 하스칼라 인문주의 인권 고전자유주의 자유, 평등, 우애 방법론적 회의 국민주의 자연철학 객관 합리성 합리주의 이성 환원주의 감히 알려고 하라 과학 과학적 방법 사회주의 전칭명제 바이마르 고전주의 스코틀랜드 계몽주의 국가별 북유럽 루드비 홀베르 안데르스 쉬데니우스 프랑스 장 르 롱 달랑베르 에티엔 보노 드 콩디야크 니콜라 드 콩도르세 후작 드니 디드로 클로드 아드리앵 엘베시위스 폴 앙리 디트리히 돌바크 뷔퐁 백작 조르주루이 르클레르 몽테스키외 프랑수아 케네 장자크 루소 도나시앵 알퐁스 프랑수아 드 사드 볼테르 독일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요한 게오르크 하만 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 프리드리히 하인리히 야코비 이마누엘 칸트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 모제스 멘델스존 프리드리히 실러 토마스 비첸만 그리스 네오피토스 두카스 테오클리토스 파르마키디스 리가스 페레오스 테오필로스 카일리스 아다만티오스 코라이스 아일랜드 로버트 보일 에드먼드 버크 이탈리아 체사레 베카리아 가에타노 필랑기에리 안토니오 제노베시 피에트로 베리 폴란드 타데우시 크자키 후고 코이와타이 스타니스와프 코나르스키 이그나시 크라시츠키 율리안 우르신 니엠체비츠 스타니스와프 아우구스트 포니아토프스키 예드르제이 시니아데츠키 스타니스와프 스타시츠 유제프 비비츠키 안제이 스타니스와프 자와스키 유제프 안제이 자와스키 포르투갈 세바스티앙 조제 드 카르발류 이 멜루 제1대 폼발 후작 러시아 예카테리나 2세 스페인 카를로스 3세 베니토 헤로니모 페이호 이 몬테네그로 미국 벤저민 프랭클린 토머스 제퍼슨 제임스 매디슨 조지 메이슨 토머스 페인 영국 프랜시스 베이컨 조지프 블랙 제임스 보스웰 애덤 퍼거슨 에드워드 기번 로버트 훅 데이비드 흄 프랜시스 허치슨 새뮤얼 존슨 존 로크 아이작 뉴턴 토머스 레이드 애덤 스미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 이성주의 낭만주의 »  v t e 과학철학 과학과 비과학 구획문제 반증 가능성 원시과학 연구부정행위 경계과학 병적 과학 사이비과학 귀납문제 헴펠의 까마귀 자연의 제일성 그루의 역설 우상론 과학이론 패러다임 공약불가능성 견고한 핵 뒤앙-콰인 명제 관찰문제 선택편향 인간원리 이론적재성 입장 실재론 사회구성주의 도구주의 반실재론 인물 베이컨 칸트 마흐 퍼스 폴라니 포퍼 굿맨 핸슨 쿤 툴민 러커토시 파이어아벤트 해킹 반 프라센 태거드 라우든 분야 물리학철학 생물학철학 수학철학 논리학철학 중앙과학 용어 가설 경험 추론 논리적 추론 논증 타당성 건전성 오류 모형 수학적 모형 이론 임시가설 연역 귀납 귀추법 오컴의 면도날 검증과 반증의 비대칭성 내부계측 인과성 선후관계와 인과관계 결정론과 비결정론 인과율 EPR 역설 v t e 대륙 철학 철학자 가다머 그람시 네그리 니체 데란다 데리다 드보르 들뢰즈 딜타이 라캉 라투르 랑시에르 레비 레비나스 레비스트로스 루만 루카치 리오타르 리쾨르 마르셀 마르쿠제 마르크스 메를로퐁티 바디우 바르트 바슐라르 바우만 바타유 발 발리바르 버틀러 베르그손 벤야민 보드리야르 보부아르 볼츠 부르디외 사르트르 셸링 쇼펜하우어 슈미트 슬로터다이크 아감벤 아도르노 아렌트 알튀세르 앙리 야스퍼스 에코 엥겔스 오르테가 이 가세트 이리가레 지젝 카뮈 카시러 칸트 코제브 크리스테바 키르케고르 키틀러 푸코 프롬 플루서 피히테 하버마스 하이데거 헤겔 호네트 호르크하이머 후설 이론 구조주의 독일 관념론 미디어 연구 비판 이론 생의 철학 실존주의 정신분석 이론 칸트주의 신칸트주의 탈구축 탈구조주의 탈근대주의 프랑크푸르트 학파 해석학 헤겔주의 현상학 개념 계급투쟁 권력 근대성 노마디즘 담론 리좀 불안 시뮬라시옹 아모르 파티 아비투스 영원 회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위버멘슈 이데올로기 지속 주요 저술 감시와 처벌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 도덕의 계보 말과 사물 물질과 기억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자본론 정신 현상학 제2의 성 젠더 트러블 존재와 무 존재와 시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창조적 진화 v t e 인식론 인식론자 아퀴나스 아우구스티누스 올스턴 로버트 아우디 에이어 버클리 로렌스 봉주르 데카르트 게티어 골드먼 굿맨 그라이스 흄 칸트 키르케고르 크립키 데이비드 루이스 로크 G. E. 무어 노직 플랜팅가 플라톤 퍼트넘 리드 라일 스트로슨 콰인 러셀 플레하노프 레닌 윌리엄슨 비트겐슈타인 월터스토프 빈 학파 이론 융관주의 구성주의자 인식학 문맥주의 결정론 경험론 진화 인식학 가류주의 여성주의자 인식학 신앙주의 기초주의 유전 인식학 전체론 무한주의 선천주의 내재주의와 외형주의 소박실재론 변증법적 유물론 귀화 인식학 현상주의 실증주의 환원주의 신뢰주의 직접과 간접 현실주의 합리주의 회의주의 이데아론 선험 관념주의 동일과정설 개념 선험 지식 분석 분석종합 구별 믿음 인과관계 상식 진술성 지식 탐사 생각 게티어 문제 정당화 지식 귀납 객관 인도의 문제 다른 마음의 문제 지각 명제 퇴행 논쟁 간단성 사변 이성 진리 더 보기... 관련 문서 인식론의 개요 진리학 신앙과 순리성 격식 인식학 초인식학 지각의 철학 과학철학 사회 인식학 포털 분류 기동 부대 토막글 토론 v t e 윤리학 이론 결의론 결과주의 의무론 칸트주의 윤리학 보살핌의 윤리 실존주의 윤리학 메타윤리학 특수주의 실용주의 역할 윤리 덕 윤리 공리주의 사회계약론 개념 자주권 가치론 믿음 양심 동의 평등 돌봄 자유 의지 선악 선 악 행복 이상 부도덕 정의 자유 도덕 규범 정치적 자유 원리 고통 스튜어드십 동정 연민 신뢰 가치 가치관 덕 세계관 범법 더 보기... 윤리학자 노자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디오게네스 티루발루바 키케로 공자 아우구스티누스 맹자 묵자 순자 아퀴나스 스피노자 흄 칸트 헤겔 쇼펜하우어 벤담 밀 키르케고르 시즈위크 니체 무어 바르트 틸리히 본회퍼 푸트 롤스 듀이 윌리엄스 매키 앤스콤 프랑케나 매킨타이어 헤어 니부어 싱어 파핏 네이글 애덤스 테일러 샌델 비첨 코스가드 누스바움 해리스 더 보기... 응용윤리학 생명윤리 기업윤리 담론윤리 공학윤리 환경윤리 법조윤리 미디어 윤리 의료윤리 간호윤리 직업윤리 성윤리 육식의 윤리 동물윤리 과학기술윤리 메타윤리학 윤리의 검증 인지주의 도덕 실재론 자연주의 비자연주의 윤리학적 주관주의 이상적 관찰자 신명론 오류이론 비인지주의 정서주의 준실재론 보편적 규정주의 도덕의 상대성 보편주의 윤리 도덕적 다원주의 상대주의 윤리 윤리 허무주의 경험론 합리론 도덕적 직관 윤리적 회의주의 관련 문서 기독교 윤리 기술윤리학 종교 윤리 진화론적 윤리 여성주의 윤리 윤리학의 역사 이념 이슬람 윤리 유대교 윤리 도덕심리학 규범윤리학 법철학 정치철학 인구윤리학 사회철학 신경윤리학 포털 분류 공용 위키프로젝트 토론 v t e 체데에프 선정(2003년) 위대한 독일인 Unsere Besten 1. 콘라트 아데나워 2. 마르틴 루터 3. 카를 마르크스 4. 조피 숄 & 한스 숄 5. 빌리 브란트 6.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7. 요한 볼프강 폰 괴테 8.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9. 오토 폰 비스마르크 10.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11-20위: 아돌프 콜핑 루트비히 판 베토벤 헬무트 콜 로베르트 보슈 다니엘 퀴블뵈크 콘라트 추제 요제프 켄테니히 알베르트 슈바이처 카를하인츠 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21-30위: 헬무트 슈미트 레기네 힐데브란트 알리체 슈바르처 토마스 고트샬크 헤르베르트 그뢰네마이어 미하엘 슈마허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빌헬름 콘라트 뢴트겐 귄터 야우히 디터 보흘렌 31-40위: 얀 울리히 슈테피 그라프 자무엘 하네만 디트리히 본회퍼 보리스 베커 프란츠 베켄바워 오스카르 쉰들러 네나 한스디트리히 겐셔 하인츠 뤼흐만 41-50위: 하랄트 슈미트 프리드리히 대왕 이마누엘 칸트 파트릭 린트너 하르트무트 엥글러 빙엔의 힐데가르트 하이노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백작 마를레네 디트리히 51-60위: 로베르트 코흐 요슈카 피셔 카를 마이 비코 폰 뷜로 알베르투스 마그누스 루디 푈러 하인츠 에르하르트 로이 블라크 하인츠하랄트 프렌첸 볼프강 아펠 61-70위: 알렉산더 폰 훔볼트 페터 크라우스 베르너 폰 브라운 디어크 노비츠키 캄피노 프란츠 요제프 슈트라우스 제바스티안 크나이프 프리드리히 실러 리하르트 바그너 카타리나 비트 71-80위: 프리츠 발터 니콜레 프리드리히 폰 보델슈빙 오토 릴리엔탈 마리온 그레핀 된호프 토마스 만 헤르만 헤세 로미 슈나이더 스펜 하나발트 시시 황후 81-90위: 빌리 밀로비트슈 게르하르트 슈뢰더 요제프 보이스 프리드리히 니체 루디 두트슈케 카를 레만 베아테 우제 트뤼머프라우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 헬무트 란 91-100위: 알브레히트 뒤러 막스 슈멜링 카를 벤츠 프리드리히 2세 바르바로사 라인하르트 마이 하인리히 하이네 게오르크 엘저 콘라트 두덴 야메스 라슈트 우베 젤러 전거 통제 BIBSYS: 90066754 BNE: XX1002482 BNF: cb11909393p (data) CANTIC: a10436352 CiNii: DA00159992 GND: 118559796 ICCU: IT\ICCU\CFIV\000707 ISNI: 0000 0001 2282 4025 LCCN: n79021614 LNB: 000015134 MBA: 871df78f-da37-417c-a898-a5de1f9a7ef0 MGP: 106921 NDL: 00445131 NKC: jn19990004171 NLA: 35259064 NLG: 61881 NLI: 000602488 NLK: KAC199614392 NSK: 000100107 NTA: 06840753X PLWABN: 9810530647305606 RKD: 447563 SELIBR: 192570 SNAC: w62r3q53 SUDOC: 02694507X Trove: 886004 ULAN: 500107055 VcBA: 495/76293 VIAF: 82088490 WorldCat Identities: lccn-n79021614 원본 주소 "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이마누엘_칸트&oldid=28154803" 분류: 이마누엘 칸트 1724년 태어남 1804년 죽음 독일의 철학자 독일의 법철학자 독일의 논리학자 독일의 인류학자 독일의 작가 독일의 불가지론자 독일의 루터교도 독일의 고전 자유주의자 독일 국민주의자 계몽주의 철학자 정치 이론가 인식론 학자 대륙철학자 자연철학자 과학철학자 심리철학자 예술철학자 형이상학자 윤리학자 합리주의자 관념론자 쾨니히스베르크 출신 쾨니히스베르크 대학교 동문 프로이센 출신 프로이센 과학 아카데미의 회원 18세기 독일 사람 18세기 철학자 숨은 분류: 인용 오류 - 오래된 변수를 사용함 깨진 링크를 가지고 있는 문서 독일어 표기를 포함한 문서 글로벌세계대백과를 인용한 문서 BIBSYS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 BNE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 BNF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 CANTIC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 CINII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 GND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 ICCU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 ISNI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 LCCN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 LNB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 MusicBrainz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 MGP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 NDL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 NKC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 NLA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 NLG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 NLI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 NLK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 NSK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 NTA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 PLWABN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 RKDartists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 SELIBR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 SNAC-ID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 SUDOC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 Trove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 ULAN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 VcBA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 VIAF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 WORLDCATID 식별자를 포함한 위키백과 문서 29개의 요소가 포함된 전거 통제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 토론 기여 계정 만들기 로그인 이름공간 문서 토론 변수 보기 읽기 편집 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요즘 화제 임의의 문서로 기부 사용자 모임 사랑방 사용자 모임 관리 요청 편집 안내 도움말 정책과 지침 질문방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파일 올리기 특수 문서 목록 고유 링크 문서 정보 이 문서 인용하기 위키데이터 항목 인쇄/내보내기 책 만들기 PDF로 다운로드 인쇄용 판 다른 프로젝트 위키미디어 공용 위키인용집 위키문헌 다른 언어 Afrikaans Alemannisch አማርኛ Aragonés العربية الدارجة مصرى Asturianu Aymar aru Azərbaycanca تۆرکجه Башҡортса Žemaitėška Bikol Central Беларуская Беларуская (тарашкевіца)‎ Български भोजपुरी বাংলা Brezhoneg Bosanski Буряад Català Chavacano de Zamboanga Нохчийн Cebuano کوردی Čeština Чӑвашла Cymraeg Dansk Deutsch Zazaki Ελληνικά Emiliàn e rumagnòl English Esperanto Español Eesti Euskara Estremeñu فارسی Suomi Võro Føroyskt Français Arpetan Nordfriisk Frysk Gaeilge 贛語 Kriyòl gwiyannen Gàidhlig Galego ગુજરાતી עברית हिन्दी Fiji Hindi Hrvatski Magyar Հայերեն Interlingua Bahasa Indonesia Interlingue Ilokano Ido Íslenska Italiano 日本語 Patois Jawa ქართული Qaraqalpaqsha Taqbaylit Kabɩyɛ Қазақша ಕನ್ನಡ Kurdî Кыргызча Latina Lëtzebuergesch Лезги Lingua Franca Nova Limburgs Ligure Ladin Lumbaart لۊری شومالی Lietuvių Latviešu मैथिली Malagasy Македонски മലയാളം Монгол मराठी Кырык мары Bahasa Melayu Malti Mirandés မြန်မာဘာသာ Эрзянь Nāhuatl Plattdüütsch नेपाली नेपाल भाषा Nederlands Norsk nynorsk Norsk bokmål Occitan Livvinkarjala ਪੰਜਾਬੀ Polski Piemontèis پنجابی پښتو Português Runa Simi Rumantsch Română Русский Русиньскый Kinyarwanda संस्कृतम् Саха тыла Sardu Sicilianu Scots Srpskohrvatski / српскохрватски Simple English Slovenčina Slovenščina Shqip Српски / srpski Sunda Svenska Kiswahili தமிழ் తెలుగు Тоҷикӣ ไทย Tagalog Tok Pisin Türkçe Татарча/tatarça Українська اردو Oʻzbekcha/ўзбекча Vepsän kel’ Tiếng Việt West-Vlams Volapük Winaray 吴语 მარგალური ייִדיש Yorùbá Zeêuws 中文 文言 Bân-lâm-gú 粵語 링크 편집 이 문서는 2020년 11월 30일 (월) 13:09에 마지막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모든 문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에 따라 사용할 수 있으며, 추가적인 조건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용 약관을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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